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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0번까지 무료로 타세요” 버스가 공짜라니… 이게 말이 되는 이유 [지구, 뭐래?]
서울 강남대로에서 운행 중인 광역 버스 [연합]

[헤럴드경제=주소현 기자] “5만원을 받았는데, 대중교통으로만 쓸 수 있죠. 기름 값도 비싼데, 차를 몰고 나올 이유가 없잖아요.”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회사원 김준수(가명·31세) 씨. 최근 이색 실험에 동참했다. 평소 자가용으로 출퇴근을 하는데 45일 간 대중교통 용도로만 쓸 수 있는 5만원이 공짜로 생긴 것.

자연스레 대중교통 이용이 늘었고, 일주일 내내 자가용을 쓰지 않기도 했다.

김씨는 “무료로 이용할 수 있으니 유독 교통체증이 심할 것 같은 날엔 당연히 대중교통을 탔다”며 “막상 대중교통을 타니 지체되는 시간이 줄어 개인 시간이 늘었다”고 전했다.

11월 9일 오전 8시 10분께 서울 지하철 신도림역 인근 버스 정류장에서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는 모습. 김영철 기자

대중교통을 무상으로 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 지 알아보고자 추진된 실험이다. 이 같은 실험을 바탕으로 아예 민간 단체, 국회 등에서 함께 법안까지 내놨다. 요는, 1년에 100회까지 무료로 대중교통을 타게 해주자는 게 골자다.

실제 이 정책이 실현된다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당연히 세금이 투입되니 국가적으론 손해일 듯 싶다. 하지만 자가용 이용이 줄고 대중교통 이용이 크게 늘어난다면? 탄소배출량이 줄고 교통 혼잡도 크게 줄어들 수 있다.

그래서 제대로 따져볼 필요가 있다. 1년에 100회까지 대중교통을 공짜로 타게 해주자는 제안을 단순히 세금 낭비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민간 싱크탱크 공익허브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복지재정위원회는 최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법안을 만들어 발표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이를 담아 실제로 대중교통의 육성 및 이용촉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골자는 이렇다. 연 100회 무료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후불교통카드나 애플리케이션에 포인트를 선지급하는 ‘모두의 티켓’ 개념이다.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서 시민들이 개찰구를 지나고 있다. [연합]

지하철를 예로 들면 100회를 이용할 시 14만원이 든다. 다 쓸 필요도 없다. 원하는 만큼 쓰면 된다. 이 정책의 핵심은 대중교통 수단을 이미 이용하는 시민을 지원하는 데에 있지 않다.

기존에 자가용을 이용하는 시민을 대중교통으로 조금이라도 유인하는 것. 기존 정책이 주기적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직장인이나 학생을 대상으로 혜택을 주는 것과 차이가 있다.

공익허브 관계자는 “몇십 회 이상 사용해야 할인되는 정기권이나 환급 정책은 자가용 이용자들에겐 진입 장벽이 높다”며 “자가용 이용자가 때때로 대중교통을 탈 수 있도록 유인하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은 기사와 무관. [123RF]

대중교통 정책의 핵심도 여기 있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전환 수요를 높이는 게 관건이다. 대중교통 이용자의 경제적 부담을 더는 동시에 도로의 탄소배출량과 교통 혼잡을 줄이는 식으로 사회적 편익을 극대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요금이 저렴할수록 자가용에서 대중교통으로 전환하겠다는 수요도 커진다. 한국교통연구원의 설문(2014년,1050원 기준)에 따르면 주요 교통수단이 자가용인 사람은 대중교통 요금 100원 인하하면 대중교통을 일주일에 3.3회 더 이용할 의사가 있다고 답했다. 200회 인하하면 3.8회로 늘어난다.

공익허브에서 수도권에 거주하는 자가용을 이용하는 성인 30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대중교통을 연 100회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면 현재보다 더 자주 이용할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78.5%로 조사됐다. 응답자 평균 추가 이용 횟수는 일주일에 3.5회였다.

한국기후환경네트워크에 따르면 자가용 이용자가 일주일에 하루만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연간 탄소 469㎏를 감축할 수 있다. 이는 나무 71그루 심은 것과 같다.

추석 연휴 고속도로 정체. [뉴시스]

반대로 대중교통 요금이 비싸면 굳이 자가용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줄어든다. 독일에서 코로나19 기간 운영했던 ‘9유로 티켓’은 대중교통 이용을 50% 늘리면서 흥행을 거뒀다. 이후 재정 상 한계로 가격을 5~6배 늘린 ‘49유로 티켓’이 시작됐지만 투입한 비용 대비 효과가 크지 않을 거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시에서 내년부터 도입하는 ‘기후동행카드’ 역시 6만5000원 짜리 정기권이다. 대중교통을 월 40회 이상 이용해야 이득이 나 자가용 이용자들이 할인을 체감하기 어렵다. 인천 등에서 출발하는 광역버스까지 연계되면 정기권의 가격은 10만~12만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경기도 수원시 경진여객 차고지 모습. [연합]

공익허브의 대중교통 요금 선지급 정책실험에 참여한 이들의 반응도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자가용을 주로 이용하는 참여자들은 교통 체증과 시간 지연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덜 수 있어 단거리 이동 시 대중교통 이용이 늘었다는 후기를 남겼다. 수도권의 전체 자가용 사용 중 대다수가 5~10km 미만의 근거리 이용이다.

자가용이 없는 참여자들도 비용 절감을 장점으로 꼽았다. 서울에 거주하는 프리랜서 이채은(29) 씨는 “교통비는 생계를 위해 필수적으로 써야하는 항목으로 조금 덜 먹고 조금 덜 쓰는 방법으로 아낄 수 없다”며 “교통비가 부담돼 외출을 꺼리면 경제 활동이 줄어들어 사회적으로도 손해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12일 서울 시내 지하철역에서 시민들이 개찰구를 지나고 있다.[연합]

모두의 티켓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재원은 1조1500억원으로 추정된다. 지하철 요금 1400원에 무료 이용분 100회, 대중교통 이용 인원 820만명(2021년 기준) 을 곱한 금액이다. 대중교통 수요가 2~3배로 늘면 최대 3조5000만원까지 예산은 늘어난다.

용혜인 의원실 관계자는 “시작하는 단계에서 지원 금액을 너무 높게 설정하면 재정 부담이 클 거라고 판단해 100회에서 시작해 늘려가는 방식으로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탄소 배출 저감이 재정 지출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데 사회적 합의가 돼 있다”며 “대중교통 요금 지원 예산이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일종의 절약분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addressh@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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