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분양계약자 보호 조치 즉각 시행
실제 사업 중단 시 환급 혹은 이행 갈림길
수분양자는 이자 부담·내집 마련 잃는 고통
28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으로 유동성 위기를 겪는 중인 태영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사진은 이날 오전 한 시민이 서울 여의도 태영건설 여의도 본사를 바라보고 있다. 임세준 기자 |
[헤럴드경제=고은결 기자] 태영건설이 28일 전격적으로 기업구조개선(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이 회사의 아파트를 분양 받은 이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수분양자 사이에서는 이미 계약한 아파트를 울며 겨자먹기로 취소하거나, 브랜드가 달라지는 일이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만약 주요 건설사가 자금난에 사업을 중단하면, 보증사고 안전장치는 마련돼 있지만 수분양자의 이자 부담 등은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정부는 분양계약자와 협력업체 보호 조치 및 시장안정 조치도 즉각 가동해 시장의 과도한 불안을 차단하기로 했다.
28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태영건설이 공사 중인 주택 사업장과 계약한 수분양자들에 대한 보호 조치를 즉각 시행한다. 현재 태영건설이 공사 중인 주택사업장 중 분양이 진행돼 분양계약자가 있는 사업장은 총 22곳이며 세대 수로는 1만9869 가구에 달한다.
이 중 14개 사업장(1만2395가구)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에 가입된 상태다. 이들 사업장은 태영건설의 계속 공사 또는 시공사 교체 등을 통해 사업을 계속 진행으로써 분양계약자가 입주하는 데 차질이 없게 할 계획이다.
사업 진행이 곤란한 경우 HUG 주택 분양 보증을 통해 분양계약자에게 기존에 납부한 분양대금(계약금 및 중도금)을 환급할 수 있다.
LH 등이 진행하는 6개 사업장(6493가구)은 기본적으로 태영건설이 시공을 계속하나, 필요 시 공동도급 시공사가 사업을 계속 진행하거나 대체 시공사 선정 등을 통해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며, 나머지 2개 사업장도 신탁사‧지역주택조합보증이 태영건설 계속공사, 시공사 교체 등을 통해 사업에 차질이 없도록 할 전망이다.
앞서 건설업계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 침체에 구조조정에 돌입한 바 있다. 당시 워크아웃 건설사들은 인원 구조조정과 부동산 매각, 그룹 유상증자는 물론 수익성 낮은 현장, 미착공 부지 사업 등을 빠르게 정리했다. 재기의 발판인 알짜 사업장을 울며 겨자먹기로 넘기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11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이수건설은 적극적인 사업구구조정 덕분에 회생의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됐다. 당시 이 회사는 시장이 불안정한 주택사업 비중을 2007년 75%에서 2010년 29%까지 줄이고, 사업 다각화에 나선 바 있다.
건설사의 몸집 줄이기는 실제 수요자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물론 건설사가 워크아웃에 돌입해도 모든 사업장을 정리하는 것은 아니다. 분양사업은 일정대로 진행할 수도 있지만, 채권단과 협의해 규모를 축소하거나 시기를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채권 회수를 위해 유망 사업지를 내다 팔기도 한다.
만약 시행·시공 모두 맡은 건설사가 워크아웃을 신청해 공사가 멈추면, 주택도시보증공사(HUG)는 분양 계약자들에게 분양대금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사업권을 회수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택 30가구 이상을 선분양하는 사업주체는 HUG로부터 분양보증을 받아야 한다. 아파트를 세우다 부도가 나면 소비자 피해를 보상하기 위해서다.
HUG는 이미 분양한 아파트의 경우, 분양이행 혹은 환급이행을 선택하게 한다. 아파트 계약자의 3분의 2 이상이 원하면 환불로 진행하고 사업장은 매각한다. 이 같은 ‘환급사업장’은 또다른 시행사가 사들여 다시 재분양에 나서기도 한다. 대표사례가 과거 C&우방 사업장이었지만 부도가 난 이후 신영이 사들여 다시 내놓은 화성 향남지구 내 한 단지다. 공정률이 80%를 넘었으면 환급하지 않고 HUG가 직접 시행자가 돼 분양을 이행한다.
단순 ‘시공’만 맡은 건설사가 워크아웃에 돌입하거나 부도가 나면 사업주체는 새 시공사를 찾아야 한다. 시공사 자금난으로 공사 중단 상태 3개월 이상 지속되면 분양계약자들은 대금 환급 혹은 이행방법 결정을 선택할 수 있다.
사실 두 가지 선택 모두 수분양자에게는 고통이다. 사업을 이어가더라도 보증사고에 따라 준공 일정이 밀려 입주가 늦춰지면 수년간의 이자를 내야 한다. HUG는 중도금 대출 이자까지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분양 대금을 돌려받기를 택해도, 분양 포기 직전까지 낸 이자는 공중분해되며 ‘내 집 마련의 꿈’까지 사라진다.
HUG 또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수분양자들에게 돈을 물어주고 사업장을 매각해야 하는데, 경기 침체 등에 응찰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큰 손실을 보고 겨우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시공사 부도로 공사가 중단된 경남 사천 소재 사업장은 수분양자들이 환급이행을 받았는데, HUG는 이후 감정평가액 1297억원을 받은 해당 사업장을 603억6900만원에 넘긴 바 있다.
이전 시공사가 포기한 사업장을 이어받을 업체를 찾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 대형사가 특정조건으로 진행하던 사업을 타사가 그대로 승계 받을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건설사 부도로 새로운 시공사를 찾아 단지 브랜드가 바뀌는 일은 종종 있다”면서도 “다만 건설업계에선 암묵적으로 다른 곳에서 하던 현장을 쉽게 가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업 계약 시점 당시의 상황, 공사 난이도 및 조건 등이 상이하다”며 “기존 시공사 조건을 그대로 승계하는 데 동의하지 않으면 조정이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keg@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