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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김상수 기자] 최근 지인 집에 초대받았다는 김모(44) 씨. 식사를 마치고 거나하게 맥주를 마시던 중, 지인이 호기롭게 “큰 마음 먹었다”며 냉장고를 향했다. 냉장고를 뒤적거리더니 꺼낸 건 다름 아닌 오징어. 소위, ‘피데기’라고 불리는 반건조 오징어였다.
A씨는 “엄청난 안주라도 꺼내나 했는데 오징어라니 웃음이 나왔다”며 “요즘 동해에서 잡아 건조시킨 피데기는 구경도 못한다며 어렵게 구한 것이라고 강조하더라”고 전했다.
오징어회도 마찬가지. 예전엔 ‘회 입문자’나 먹던, 저렴한 회의 대명사였다. 바닷가 여행을 가면 가난한 주머니로도 기분 낼 수 있던 고마운 회이기도 했다.
요즘은 몸값이 다르다. 물회를 즐겨 먹는다는 직장인 차모(39) 씨는 “물회 중에서도 오징어 물회가 저렴한 물회였는데, 요즘은 물회에 오징어회를 넣어주는 집 자체가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식당에서도 원래 오징어볶음이 제육볶음보다 흔했는데, 요즘 잘 안 보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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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주변의 경험담. 과연 일부 만의 경험들일까? 아니다. 실제로 오징어가 사라지고 있다. 이미 국내에서 잡히는 오징어는 급감한 지 오래이고, 먼바다에서 잡아오는 오징어도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이유는, 결국 기후변화다. 특히, 바닷물이 갈수록 뜨거워지면서 오징어의 생태계 자체가 급변하고 있다. 오징어가 국민 음식이던 시대, 이젠 추억에서나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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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최근 오징어 어획량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연근해 오징어 어획량은 2014년엔 16.3만t에 이르렀지만 매년 감소, 특히 2017년 이후엔 10만t 이하로 크게 줄었다. 2022년엔 3.6만t까지 떨어졌다. 불과 10여년 만의 일이다.
자료 출처 해수부 |
국내에서 오징어가 급감하니 원양어선을 통해 오징어 어획량을 채우고 있다. 하지만 원양어선 생산량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14년엔 16.7만t 수준이었으나 2015년 15.1만t, 2017년 4.6만t, 2022년엔 4.8만t으로 줄었다.
오징어가 급격하게 감소한 원인으론 기후변화가 유력하다. 특히, 한반도 인근 바다의 수온이 크게 상승하면서 주변 어류의 생태계 자체가 급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국 기후변화 평가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주변 해역의 표층 수온은 2100년엔 지금보다 최대 약 3~6도 더 올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단순히 뜨거워지는 것만 문제가 아니다. 바닷물의 성질 자체도 변하고 있다. 바다에 탄소가 지속적으로 흡수되면서 바다가 계속 산성화되고 있다. 대양에서 표층 해수의 pH(산성도를 가늠하는 척도, 낮을수록 산성화)는 1980년 이후 지속적으로 줄고 있으며, 10년 단 0.017~0.027의 범위로 감소 중이다. 국내에선 다른 해역보다 동해에서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해양 산성화가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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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로도 화학적으로도 바다는 급변하고 있다. 바다가 삶의 전부인 해양 생물들은 삶 자체가 급변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오징어가 사라지는 건, 그 중 하나의 예일 뿐이다.
보고서는 “빠르게 서식지가 북상하고 있는 방어처럼 오징어도 기후변화 여파로 서식지가 급변하고 있다”며 “한반도 주변 해역의 수온 상승은 어종의 공간적인 분포 변화를 초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dlcw@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