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찰가율은 뛰는데, 낙찰률을 하락세
인기물건에만 사람 몰리는 ‘쏠림현상’
응찰자 수십명 몰려도 ‘고가낙찰’ 없어
[헤럴드경게=박일한 선임기자] 지난달 26일 오전 서울동부지법 경매4계.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85㎡(이하 전용면적)가 처음 경매에 나왔다. 감정가는 20억4000만원. 8명이 응찰해 21억800만원에 입찰한 원모 씨가 새 주인이 됐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은 104%를 기록했다.
이날 이 법원엔 이 사례를 포함해 모두 11건의 아파트 경매가 진행됐는데, 2건이 낙찰가율 100% 이상을 기록했다. 8건은 한명의 응찰자도 없어 유찰됐다. 감정가가 시세보다 낮은 물건엔 사람들이 몰려 낙찰가율이 올라가지만, 조금이라도 비싸다 싶으면 사람들이 한명도 응찰하지 않았다.
수도권 아파트 경매시장에 ‘쏠림현상’이 더 뚜렷해졌다. 규제완화 효과를 볼 수 있는 강남 재건축, 주택 수요가 많은 양천구 목동 등 인기지역 대단지, 신생아특례대출 대상인 9억원 이하 수도권 외곽지역 아파트 등엔 사람들이 몰리지만 그밖에 물건엔 사람들이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경매전문 문구가 표시돼 있다. [연합] |
경매업체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2월 아파트 경매시장에서 서울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은 87.2%를 기록해 전월(86.2%) 보다 1%p 올랐다. 이는 지난 2022년 10월(88.6%) 이후 16개월 내 가장 높은 것이다.
같은 달 경기도 아파트 평균 낙찰가율도 85.7%를 기록해 전달(83.4%)에 이어 상승세를 이어갔다. 이는 2022년 7월(92.6%) 이후 19개월 내 최고치다.
낙찰가율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전반적인 낙찰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낙찰률(경매진행건수 대비 낙찰건수 비율)은 34.9%로 전월(37.7%) 보다 더 내려갔다. 경기도 아파트 낙찰률도 전월(50.8%) 보다 10%p나 떨어진 40.4%를 기록했다.
낙찰가율은 뛰는데, 낙찰률은 낮은 수준을 보이는 건, 쏠림현상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감정가가 시세보다 싸거나 호재가 뚜렷한 물건에만 사람들이 몰려 낙찰 물건의 평균 가격은 높아지고 있지만, 전체 경매시장 차원에선 유찰물건은 계속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 경매시장에서 응찰자들은 무리하게 입찰하지 않는다. 지난달 28일 의정부지법 고양지원에서 경매가 진행된 고양시 일산동구 ‘백마마을’ 26.5㎡이 대표적인 사례다. 응찰자가 51명이나 몰렸지만 낙찰가율은 89%(감정가 2억7600만원, 낙찰가 1억9320만원)에 머물렀다.
29일 수원지법 안산지원에서 경매 절차를 진행한 광명시 하안동 주공 아파트 36㎡도 응찰자가 30명이나 몰렸지만 낙찰가율(감정가 3억3400만원, 낙찰가 3억510만원)은 91% 선에서 마무리됐다.
이영진 이웰에셋 대표는 “통상 응찰자가 수십명씩 대거 몰리면 낙찰가율이 감정가보다 높아져 100% 이상을 기록하는 ‘고가낙찰’ 가능성이 커지지만, 요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며 “사람들이 몰린다고 무리한 입찰이 늘어 낙찰가율이 급등하는 현상은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서울은 강남권 등 인기지역 대단지와 각종 규제완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재건축 대상 아파트, 서울 외곽 9억원 이하 중저가 단지에 응찰자가 몰리고 있다”면서 “인기 물건 중심으로 평균 낙찰가율을 끌어올리는 현상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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