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도시기금 고갈 우려…추경 불가피
다른 사기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도
서울 시내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다가구주택·빌라 전세와 월세 매물 정보가 붙어 있다. [연합] |
[헤럴드경제=박로명 기자] 전세 사기 피해자를 ‘선(先)구제 후(後)구상’ 방식으로 지원하는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본회의에 부의됐다. 야당이 오는 28일 열리는 본회의에서 개정안을 처리한다는 방침을 밝히면서 정부 재정 부담 및 다른 사기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 등이 불거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개정안이 피해자와 정부,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어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여야는 지난 2일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부의의 건을 재석 268명 중 찬성 176명, 반대 90명, 무효 2명으로 가결했다. 부의는 본회의에서 안건을 심의할 수 있게 됐다는 의미다. 지난 2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이 본회의에 직회부한 법안으로, 이후 숙려기간(30일)을 넘기고도 여야 합의에 실패하면서 부의 여부를 묻는 표결을 이날 진행했다. 야권이 의석 과반을 차지한 만큼 특별법 개정이 유력하다.
이 개정안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기관이 주택도시기금을 활용, 전세사기 피해 주택의 임차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수해 피해자를 우선 구제해주고 추후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는 게 핵심 내용이다. 정부와 여당은 사적 계약에 따른 사기 피해를 정부가 구제한 전례가 없고, 다른 사기 피해자와의 형평성도 맞지 않다며 난색을 표하고 있다.
정부는 법안 개정으로 인한 막대한 재정 부담을 우려하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최소 1조원, 최대 4조원의 재정을 투입해야 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법안이 개정되면 한 달 뒤부터 시행되는데, 재원 마련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올해 주택도시기금 운용계획이 확정된 상황에서 전세보증금 반환채권을 매입하려면 기획재정부와 협의, 관련 법령 개정이 필요하다.
지난달 17일 국회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 등의 주최로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 본회의 처리 촉구'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연합] |
정부는 주택도시기금 여유자금이 부족해 추가경정예산 편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려면 22대 국회 원구성이 완료되는 8월 말까지 기다려야한다”며 “여야 합의로 추진하는 법이 아닌 만큼 재원 마련을 위한 후속 작업이 준비돼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주택도시기금은 청약저축 납입액과 국민주택채권 등으로 조성한 ‘빌린 돈’”이라며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을 위해 소모성으로 용도로 사용하는 건 기금의 성격과 맞지않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전세사기 특별법 적용 대상과 일몰 시점, 형평성 등을 둘러싼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한국부동산경영학회장)는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선구제 후구상 방식으로 지원한다고 하지만, 구상채권은 부실채권이기 때문에 회수가 불가능한 경우 대부분”이라며 “정부의 무조건적인 보상은 주택도시기금의 재전 건전성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 전세사기 피해자가 속출하는 경우 특별법을 연장해 국가가 영구적으로 지원해야 할 상황이 올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조주현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는 “여러 사기 피해자 중 전세사기 피해자에 한해서 정부가 보상하는 것이 형평성에 맞는지, 국민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며 “그동안 통계로 볼 때 집행 기관이 구상권 행사로 채권을 회수할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손실 처리를 국고로 할 수밖에 없는데 국민 세금으로 메우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개정안이 2년간 한시적으로 효력을 발휘한다고 하지만 이번 한 번으로 끝날지는 미지수”라며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주택시장이 요동칠 때마다 피해자를 구제하는 기준으료 사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원해야하는 피해자 범위와 시기, 방법 등을 구체화해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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