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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세기 최고 발명품 비켜” 칼 가는 LG화학의 ‘회심 카드’ [그 회사 어때?]
옥수수·사탕수수 기반 바이오나일론 연구개발
탄소 절감 친환경 스페셜티…불황 돌파 승부수
원료부터 중합·가공까지 밸류체인 구축…국내 최초
섬유·자동차 부품·전자기기·소비재 등 전방위 활용
바이오나일론 글로벌 수요↑…내년 4분기 상업생산
〈그 회사 어때?〉

세상에는 기업이 참 많습니다. 다들 무엇을 하는 회사일까요. 쪼개지고 합쳐지고 간판을 새로 다는 회사도 계속 생겨납니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도, 수년을 하던 사업을 접기도 합니다. 다이내믹한 기업의 산업 이야기를 현장 취재,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쉽게 전달해드립니다.

최인호 LG화학 석유화학연구소 신소재개발 바이오 PA 프로젝트팀 책임이 LG화학 마곡 연구개발(R&D)캠퍼스에서 바이오나일론(PA56) 생산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LG화학 제공]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옥수수, 사탕수수 등 친환경 바이오 원료를 사용해 ‘거미줄보다 가늘고 강철보다 강한’ 기존 나일론에 필적하는 물성을 구현했다. 강도, 내구성이 좋고 마찰에 강해 섬유 뿐만 아니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등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바이오매스를 원료로 한 만큼 석유 기반의 기존 나일론에 비해 탄소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 ‘20세기 최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꼽히는 나일론을 대체할 소재로 ‘바이오나일론’이 꼽히는 이유다.

바이오나일론(폴리아마이드56, 이하 PA56)은 LG화학이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카드 중 하나다. 아직까지 초기 단계인 바이오나일론 시장을 개척, 선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2월에는 CJ제일제당과 협력해 바이오나일론 생산 및 판매를 위한 합작법인을 만들기로 한 상태다.

지난달 29일 LG화학 마곡 연구개발(R&D)캠퍼스에서 만난 정진경 LG화학 석유화학연구소 신소재개발 바이오 PA 프로젝트팀 PL(팀장)은 “기존에 나일론을 생산하는 회사들도 원료부터 생산까지 다 하는 곳은 많지 않다”며 “PA56의 원료인 라이신(Lysine)부터 중합, 가공까지 완전 수직계열화(full integration)된 밸류 체인을 갖추고 있는 곳은 LG화학이 국내서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라이신은 옥수수, 사탕수수 등을 미생물을 이용해 분해·발효시켜 만드는 필수아미노산의 한 종류다. 라이신을 분해해 나오는 것이 PMDA(Pentamethylenediamine)다. 최인호 바이오 PA 프로젝트팀 책임은 “옥수수나 사탕수수 등 바이오매스에서 PMDA라는 원료를 만들고, 이를 중합, 가공하는 공정을 거쳐 PA56을 만들게 된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이 생산하는 PA56은 석유 기반 나일론(PA66)과 마찬가지로 섬유, 자동차용 부품, 전기전자기기, 필름 포장 등 패키징, 소비재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다. 섬유용으로는 단순히 의류 뿐만 아니라 자동차 에어백, 타이어코드 등에도 사용된다.

정 팀장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용으로 난연성이 우수하고, 바이오 유래다보니 녹는점이 석유 기반 나일론보다 7~8도 정도 낮은데 이것이 오히려 가공에 좀 더 유리하게 작용한다”며 “의류용으로는 흡습성이 석유 기반 나일론보다 높아 촉감도 좋고 냉감성도 뛰어난 점이 장점”이라고 했다.

정진경(오른쪽) LG화학 석유화학연구소 신소재개발 바이오 PA 프로젝트팀 PL(팀장)과 최인호 책임이 지난달 29일 LG화학 마곡 연구개발(R&D)캠퍼스에서 헤럴드경제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 [LG화학 제공]

석유화학 업계는 중국발(發) 범용 석유화학 제품 공급과잉,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으로 ‘불황의 아이콘’이 된지 오래다. 돌파구로는 저탄소 친환경 고부가가치(스페셜티) 제품이 꼽힌다. 신학철 LG화학 부회장이 지난달 31일 아시아석유화학회의(APIC)에서 “석유화학 업계는 기존 범용 제품 중심 포트폴리오에서 벗어나 저탄소 고부가가치 제품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바이오나일론은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제품 중 하나다. LG화학이 바이오나일론 시장에 뛰어든 이유다.

특히, 라이신 기반의 PA56가 더욱 그렇다. 사실 이전에도 ‘바이오나일론’ 혹은 ‘바이오플라스틱’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소개됐던 제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캐스터오일(피마자유)을 원료로 한 PA11, PA1010 등이 그 예다. PA56은 가장 최근에 시장에 소개된 ‘최신 바이오나일론’으로, 원료의 발효기술이나 분리정제 등 에서 기존 바이오나일론보다 높은 기술력을 요한다.

이렇다 보니 세계적으로도 PA56을 생산하는 기업은 1~2곳 뿐이고, 이마저도 생산이 원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팀장은 “LG화학의 PA56은 타사의 PA56이나 석유 기반 나일론과 동등 이상의 품질 수준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했다.

바이오매스인 라이신을 원료로 한 LG화학의 바이오나일론(PA56) 제품들 [LG화학 제공]

흥미로운 부분은 LG화학이 이전에는 석유 기반 나일론을 전혀 생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바이오나일론 시장에 처음 진출하면서도 타사의 기술, 라이선스 등을 사오거나 하지 않고 LG화학만의 자체 기술로 개발한 것도 주목할 만한 지점이다.

이는 친환경 소재 연구개발(R&D)에 대한 LG화학의 과감한 투자 기조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LG화학은 친환경 소재를 배터리 소재, 혁신 신약과 함께 3대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친환경 소재 매출을 2022년 1조9000억원에서 2030년 8조원까지 늘리겠다는 것이 목표다.

정 팀장은 “자체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보니 고객사가 원하는 어떤 조건도 충족 가능한 맞춤형 상품(customized product) 제조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파일럿 공장(pilot plant, 시범생산공장) 가동 초기의 안정화 단계도 단축할 수 있었다. 최 책임은 “나일론을 아예 처음하다 보니 연구적으로 초반 세팅 등의 측면에서 일부 어려움이 있었으나 자체 기술로 설비 보완 등을 통해 빠르게 문제를 해결했다”고 설명했다.

LG화학은 내년 4분기부터 PA56의 상업생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이미 지난해 말부터 파일럿 공장 가동에 들어간 상태다. 정 팀장은 “지난해부터 CJ와 바이오 원료 공동연구개발을 진행 중이고 내년 4분기 합작사 설립이 목표”라며 “PA56 상업 생산을 시작하면 이를 제품에 적용하겠다는 기업들과도 이미 협업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세계 시장에서는 기후변화 대응, 저탄소·친환경 트렌드가 대두하면서 바이오나일론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있는 점도 기회 요인이다. LG화학은 바이오나일론 세계시장 수요가 지난해 40만t 규모에서 2030년 150만t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yun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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