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립스틱 효과’ 속 불황템으로
입술·손톱에서 드러난 경기불황
“소액 기분전환 쇼핑…유의해야”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경기 불황 속에서 여성들이 립스틱을 더 많이 산다는 속설이 한국에서 증명되고 있다. 이른바 ‘립스틱 효과(Lipstick effect)’다. 고물가·고환율·고유가 등 악화된 경제지표가 이어지는 가운데 기분 전환을 위한 매니큐어·립 제품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다.
헤럴드경제가 아모레퍼시픽에 의뢰한 결과에 따르면 헤라·에스쁘아·에뛰드 3개 브랜드의 립스틱(고체) 제품 매출(2022년~2024년 현재까지)은 연평균 63% 증가했다. 같은 기간 립밥 제품군, 틴트 등 립 리퀴드 제품군도 각각 연평균 55%, 22% 성장률을 보였다.
올리브영에서도 지난해 립스틱 카테고리 연간 매출이 전년 대비 78% 늘었다. 올해 1~5월 기준으로는 전년 대비 65% 증가했다.
립스틱 판매 호조는 코로나19 엔데믹을 거치며 소비가 회복된 영향도 크다. 다만 업계는 신장률이 지속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업계 관계자는 “2022년 하반기부터는 코로나19로 인한 ‘보복 소비’ 영향권을 어느정도 벗어난 소비로 보고 있다”이라면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지속적으로 립스틱 제품군의 매출이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CNN이 보도한 립스틱 효과 관련 보도. [CNN 캡처] |
에스쁘아의 노웨어 립스틱 바밍 글로우 제품들. [아모레퍼시픽 제공] |
립스틱은 기분 전환을 위한 저가 소비재의 대표 주자로 경기 불황과 함께 자주 언급된다.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CNN은 여성들의 입술에 경기 침체 여부를 확인할 실마리가 있다며 ‘립스틱 효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보도했다.
‘립스틱 효과’는 불황기에 기분 전환용 소비를 전제로, 소비자 만족도가 높은 저가의 소비재 판매가 늘어나는 것을 말한다. 미국에서는 9·11 테러를 겪은 2001년 가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화장품 매출이 증가했다. 지갑이 얇아진 상황 속에서 저렴한 비용으로 합리적인 사치를 부리고 싶은 소비자의 심리가 배경이다.
업계는 입술 외 손톱도 주목할 만한 부위로 꼽는다. 립스틱처럼 여성들이 기분 전환을 위해 선택하는 소비재 중 하나가 네일 제품이기 때문이다. 올해 1~5월 기준 지그재그에서 판매된 매니큐어 거래액은 39% 늘었다. 다이소 역시 같은 기간 네일젤폴리쉬 매출이 37% 증가했다. 지그재그 관계자는 “1~2만원을 넘지 않는 네일제품이나 잡화는 부담 없는 금액이기 때문에 기분 전환을 위한 아이템으로 주목받는다”며 “헤어 액세서리나 저가의 주얼리, 키링 등에서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얻는 소비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게티이미지뱅크] |
최근 급성장한 중국계 이커머스인 알리익스프레스나 테무의 인기도 경기 불황을 보여주는 현상 중 하나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서 늘어난 ‘알리깡’, ‘테무깡’ 게시물도 같은 맥락이다. ‘N만원으로 가방 여러 개 사기’ 등 값싸게 물건을 구입해 소비 욕구를 해소하는 현상이다.
전문가들은 불황일수록 자기보상적 성격의 소비를 줄이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그동안 ‘돈을 써왔던 습관’이 있고, 누렸던 생활수준과 소비경험이 주는 힘이 강력하다”면서 “고물가 속에서 소비로 얻는 만족감 자체를 포기할 수는 없어 재화의 품질을 낮추거나 과시할 수 있는 사치재에 대한 수요가 역설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불필요한 지출이 늘 수 있어 유의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분 전환형 소액 쇼핑이 만연해지면 큰 쓸모가 없는 ‘예쁜 쓰레기’가 늘어날 수 있다”며 “정말 필요한 곳에 써야 할 돈이 낭비될 수 있으니 불황일수록 계획적 소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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