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페인 성공 4년 후 저평가 심화
고용 5.6%·자본지출 8.4% 하락
밸류업 위해 지배구조 규제 지양을
행동주의 캠페인이 성공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기업 가치가 하락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고용과 투자가 감소하며 기업 펀더멘털이 약화돼, 역설적으로 캠페인 성공 이전보다 기업 가치가 낮아진다는 지적이다. 최근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가 두산밥캣 이사회에 두산로보틱스와의 포괄적 주식 교환을 통한 합병을 재추진하지 않겠다고 공표할 것을 요구한 가운데, 실질적으로 기업가치를 제고할 수 있는 경영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21일 ‘행동주의 캠페인이 기업가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2000년 이후 행동주의 캠페인을 겪었고 ▷시총과 자산이 10억 달러(한화 약 13조원) 이상인 970개의 미국 상장사(캠페인 성공 549개·실패 421개)를 대상으로 행동주의 캠페인 성공 여부에 따른 기업가치를 분석했다고 밝혔다.
캠페인이 성공한 기업들은 단기에는 기업가치가 일부 개선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성공 이전에 비해 기업가치가 오히려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행동주의 캠페인은 주로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성공하는 경향을 보였다. 행동주의 캠페인이 성공한 기업가치는 실패한 기업 대비 16.1% 저평가됐다. 캠페인이 성공하면 3년 이내에 기업가치가 1.4%포인트만큼 개선되면서 저평가가 일부 해소됐다.
그러나 캠페인 성공 4년 이후에는 기업가치가 다시 2.4%포인트 악화되면서 저평가가 심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캠페인 성공 이전에 비해 1%포인트 악화되면서 궁극적으로 기업가치를 하락시키는 것이다.
기업가치가 하락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고용과 투자(자본적 지출)의 축소로 인한 기업 펀더멘탈 약화가 지적됐다.
분석 결과, 행동주의 캠페인이 성공하면 2년간(성공 1년 전부터 1년 후) 고용은 평균 3%, 자본적 지출은 평균 10.7% 감소했다. 장기적으로 고용은 5.6%, 자본적 지출은 8.4% 줄었다. 반면 배당은 단기(캠페인 성공 1년 전부터 1년 후까지 2년간)에는 평균 14.9% 증가하지만, 장기에는 다시 캠페인 성공 이전 수준으로 감소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한경협은 행동주의 캠페인이 성공하면 단기적으로 고용과 투자를 줄이고 배당을 늘리는 현상이 나타나지만, 장기적으로 고용과 투자가 감소하며 기업가치의 저평가가 심화되는 것으로 풀이했다.
따라서 기업 밸류업을 위해서는 지배구조 규제(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 행동주의 캠페인이 급증할 수 있는 여건을 구축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국내 기업을 대상으로 한 행동주의 펀드의 캠페인 활동은 지배구조 규제 정책의 강화와 함께 가파르게 증가해왔다. 영국 데이터 분석 기관인 인사이티아(Insightia)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된 한국 대상 기업의 개수는 2017년 3개에 불과했으나 2019년 8개, 2023년 77개로 최근 5년 사이에 9.6배 증가했다.
이 같은 상황에 최근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 주주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등의 지배구조 규제 법안이 입법화되면, 행동주의 캠페인의 활성화와 성공 가능성이 크게 증가해 기업들의 경영권 방어가 매우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서는 기업이 투자와 고용에 집중하면서 근본적인 경쟁력을 높여 나가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며 “기업이 경영권 방어에 천문학적인 자금과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본질적인 사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상법 개정 등 행동주의 펀드에게 유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는 입법은 매우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민지 기자
jakmeen@herald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