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소 뷰티 9월 누적 매출 160% 성장
좋은 품질 전제로 가격 경쟁력 높여야
서울 홈플러스 상봉점 내 다이소 매장의 뷰티 쇼룸 김희량 기자 |
‘다이소 샤넬밤’, ‘르메르(패션 브랜드의 이름)맛 유니클로’, ‘스웨덴캔디 저렴이’....
고물가 속 개인 소비력이 약화된 가운데 비싼 브랜드 상품 대신 유사한 기능 혹은 품질을 가진 저가형 제품을 찾는 현상이 확대되고 있다. 복제품을 뜻하는 영어 단어 ‘Duplication’에서 유래된 듀프(dupe) 소비는 단순히 위조품을 찾는 것과는 달리 가성비 높은 대안 제품을 구입해 만족도를 높이는 것을 의미한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듀프 소비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다이소 뷰티 부문’의 1~9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약 160% 성장하며 폭발적인 인기를 나타내고 있다. ‘샤넬 립앤치크밤(6만3000원)’과 기능이 유사한 저렴이 상품으로 입소문 난 ‘손앤박 아티스프레드컬러밤(3000원)’은 출시 후 반년이 지난 지금도 매장에서 구하기 쉽지 않은 인기 품목이 됐다.
디올 루즈 블러쉬의 대체 상품으로 홀리카홀리카의 아이섀도우을 구매해 본 30대 직장인 이모 씨는 “백화점 브랜드를 사기엔 부담스럽고, 화장품은 쓰고 나면 중고판매도 쉽지 않아 매몰비용이 많이 든다”면서 “트렌드에 뒤쳐지지 않으면서도 아낄 수 있어 제형이나 색상이 비슷한 ‘저렴이’제품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국내 뷰티 대기업들은 다이소 전용 브랜드를 확대하며 이런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LG생활건강은 지난 4월 전용 브랜드 ‘퓨어더마’에 이어 7월 ‘케어존’을 냈다. 아모레퍼시픽은 지난달 신규 저가 브랜드 ‘미모 바이 마몽드’를 선보였다.
특히 패션·뷰티 부문에서 이런 듀프 소비를 겨냥한 상품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유니클로의 C컬렉션 등 디자이너 협력 제품이 대표적이다. 르메르 등 유명 해외 브랜드 디자이너가 참여한 컬렉션은 패션 소비자들 사이에서 ‘르메르맛 유니클로’로 불리며 대안 제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외에도 ‘룰루레몬의 저렴이 버전 CRZ 요가’, ‘젠틀몬스터의 저렴이 버전 블루엘리펀트’ 등 온라인에서는 유사한 기능의 두 브랜드 제품을 비교한 영상이나 콘텐츠를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유통업계는 듀프 소비를 드러내는 사례로 PB(자체브랜드) 상품의 매출 증가를 꼽는다. 편의점 GS25가 올해 1월부터 판매한 초가성비 PB 리얼프라이스 상품의 누적 매출도 지난 15일 기준 350억원을 돌파했다. 남상현 GS리테일 MD는 “대형 유통사의 소싱 능력을 바탕으로 1000원 콩나물, 1300원 어묵 등 식품을 비롯해 700원 마스크팩, 5000원 토너 등 우수 제조사의 상품을 발굴해 선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듀프 소비를 단순히 가성비를 쫓는 현상으로 보지 않는다. 기본 전제 조건이 품질이기 때문이다. 남 MD는 “무조건 가격이 싼 제품을 찾는 게 아니라 품질을 따지거나 소비자가 자신만의 소비 기준을 정한 후 돈을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GS샵 패션 담당 임재원 매니저는 “경기 침체로 전반적인 가격대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아져 많이 묶어 싸게 파는 다종 구성에 대한 매력이 줄었다”며 “예전에 3종 묶음 상품을 팔았다면 이제 배송비가 생겨도 마음에 드는 1종을 낮은 단가로 살 수 있는 방식을 도입하는 추세”라고 전했다.
반대로 용량을 줄인 ‘역슈링크’로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업체들도 있다. 이마트24가 지난달 다이소 리들샷의 인기에 대응해 편의점 최초로 7900원에 선보인 ‘플루 시카부스터 에센스100(1.5㎖·5개)’도 이런 제품이다. 이정민 이마트24 이정민 MD는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용량과 가격 책정이 중요하다”며 “1~4회 사용분이 휴대용 파우치에 담긴 소용량 스파우트 파우치 상품이나 트라이얼 체험상품이 잇따르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듀프 소비 패턴이 강화되면서 활용도가 높은 상품의 가격을 인하하거나 동결하는 사례도 두드러진다. SPA(제조유통일괄형) 패션 유통 브랜드 스파오는 대표 상품 중 하나인 웜테크(발열내의)의 가격을 낮춰 2009년 시장가(1만5900원)보다 38% 싸게 팔고 있다.
그 결과 지난해 웜테크는 전년 대비 352% 성장했다. 스파오 관계자는 “저품질 저가 상품이 아니라 품질이 좋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는 것이 요즘 소비자의 특징”이라며 “업체 입장에서는 소재를 통합하거나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의 생산공장과 협상하는 것이 관건이 됐다”고 말했다.
가격 측면의 매력을 위한 기획력은 기본이 됐다. 편의점 CU도 최근 초가성비를 강조한 990원 시리즈를 확장하고 있다. 권유진 BGF리테일 음용식품팀MD는 “합리적인 가격과 용량으로 기존 NB(제조브랜드)의 대체품을 내놓기 위해 가공유 부문에서 1000원 가격대를 깨고 출시한 300㎖ 용량 최초의 가공유를 선보였다”며 “지난달 출시했지만, 이달 누적 판매량 100만개 달성을 앞둘 정도로 인기”라고 전했다. 김희량·정석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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